선천성심장병 태아 낙태로 내모는 저수가…‘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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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환우회사무국 작성일16-05-17 10:40 조회4,066회 댓글0건본문
심장초음파 급여화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소아심장과…“몸무게 대비 수가 책정하는 꼴”
[라포르시안] '어린이는 작은 어른이 아니다.
소아과학 교과서 첫머리에 적혀 있는 글귀다. 미국 필라델피아 어린이병원 입구에도 새겨져 있다.
성인과는 다른 어린이의 연령과 체형, 심리 등을 고려한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소아환자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크게 부족하다. 어린이를 단지 성인보다 신체가 작은 존재로만 인식한다.
그러다 보니 의료공급 시스템부터 정책, 건강보험 급여기준에 이르기까지 소아환자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적 배려가 부족하다.
비록 몇 군데 되지 않지만 국내 대다수 어린이병원이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인 환자보다 더 많은 인력·시설 투입되지만 수가는 똑같아
현재 국내에서는 정부 지원 아래 서울대병원과 강원대병원, 전북대병원, 경북대병원, 양산부산대병원 등의 국립대병원에서 어린이병원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 등 일부 민간병원도 어린이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설립 주체가 공공이든 민간이든 모든 어린이병원의 공통점은 만성적자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설립된 지 30년이 된 서울대 어린이병원의 경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적자를 벗어난 적이 없다. 작년에도 100억원이 넘는 적자가 발생했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어린이병원도 해마다 수십억원의 적자를 껴안고 있다.
어린이병원이 만성적자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 수가 때문이다. 소아환자를 진료하고 치료하는 데는 신체·정신적 특성상 성인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인력, 장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수가는 성인 환자와 비슷한 수준이다. 환자를 많이 진료할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를 들어 심전도 검사를 할 때 성인은 팔과 다리, 가슴에 전극을 붙이고 3분 정도면 완료되지만 소아환자는 약한 수면제를 먹이고 잠들었는지 확인한 뒤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20~30분의 시간이 걸린다.
심장 초음파검사도 마찬가지다. 소아 환자는 경우에 따라 진정제나 수면제를 투여한 후 잠이 든 상태에서 검사를 시행해야 할 때가 많다 보니 성인보다 더 많은 시간과 인력이 들지만 수가는 성인과 다를 바 없다.
아이를 상대로 채혈을 할 때도 발버둥치거나 정맥을 찾기가 힘들어 주삿바늘을 여러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보험급여 혜택은 한 개만 적용된다.
국립중앙의료원이 작성한 '어린이병원 운영모델 개발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어린이병원이 적자를 보는 이유는 영유아 등 어린이 환자를 간호하기 위해서 인력이 많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일반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의 경우 각 병동 간호스테이션 한 개가 관리하는 병상 수가 43%0개인 반면 어린이병원은 병동 간호스테이션 한 개당 병상 수가 평균 33개에 평균 21명의 간호사가 배치된다. 그만큼 인력 투입이 많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어린이병원이 적자를 줄이는 방법은 진료과목 축소, 의료인력 감축, 적자가 큰 진료시설 폐쇄, 과잉진료로 수익성 제고 등이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이런 방법은 어린이질환에 대한 최종 진료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아심장과 전국 10여개 병원서만 운영…신규 배출되는 소아심장 전문의 연간 1~2명 불과
"이대로 가면 소아심장과 맥 끊길 수도"
어린이병원과 마찬가지로 선천성 심장질환 소아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소아심장과도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소아심장 전문의 신규 인력 배출이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고, 소아심장과를 운영하는 병원도 손에 꼽을 정도다.
대한소아심장학회와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소아심장과를 운영하는 병원은 서울과 경기도의 대형병원과 지방의 일부 국립대병원을 포함해 10곳 안팎이다.
소아심장 전문의 수도 110명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이마저도 지원자가 급감하면서 신규 인력 배출도 맥이 끊기다시피 한 상황이다.
대한소아심장학회 주찬웅 회장(전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현재 전국적으로 소아심장 전문의 수는 100명을 조금 넘는 상황이다. 그런데 소아심장 분야를 지원하는 의사는 연간 1~2명에 불과하다"며 "게다가 현재 활동하는 소아심장 전문의 대부분이 중장년층의 연령으로, 이런 식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소아심장 전문의 명맥이 끊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선천성 심장질환을 진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심장초음파가 4대 중증질환 대상 초음파 급여화에 이어 전면 급여화가 추진되면서 더욱 힘든 상황에 빠졌다.
소아 심장초음파는 성인을 대상으로 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판독의 전문성을 요구하지만 급여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런 점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10월부터 4대 중증질환을 대상으로 초음파 급여화가 이뤄졌다. 급여화 과정에서 소아 심장초음파의 경우 관행수가(25~30만원)의 절반 수준으로 책정됐다.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소아심장과 정조원 교수는 "소아 심장초음파 검사는 일반 심장초음파와 비교해 5~6배 정도 더 시간이 든다"며 "그러나 초음파 급여화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런 부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초음파 전면 급여화를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소아 심장초음파의 수가 현실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나마 심장초음파는 소아심장과가 수익적인 측면에서 버텨올 수 있었던 마지막 보루나 마찬가지였는데 관행수가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으로 급여화가 이뤄지면 소아심장 분야를 더는 유지하기 힘든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다.
정 교수는 "관행수가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급여화가 이뤄질 경우 필요한 인력이나 시설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병원이 투자하려는 동기가 사라지게 된다"며 "지금도 지방에서는 소아심장 전문의를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심장초음파 수가마저 제대로 책정되지 않으면 앞으로 이 분야를 지원하는 의사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의 상황을 가장 우려하는 건 선천성 심장질환 환아를 둔 부모들이다. 자칫 심장초음파 급여화 이후 소아심장과가 더욱 줄어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높다.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안상호 대표는 "현재 선천성 심장질환 분야가 위기를 맞고 있다. 저출산에 따른 환자 수 감소와 진료과 특성상 수익 창출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그러다 보니 병원들이 소아심장과에 대한 투자에 난색을 표하고, 의사들도 힘들고 전망이 불투명한 분야의 지원을 기피하면서 소아심장 전문의 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지금처럼 간다면 향후 10년 뒤에는 선천성심장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나기 어렵게 될 지도 모른다"며 "지금도 지방의 선천성 심장질환 환아와 부모들은 진료를 받기 위해 수도권 등으로 원정진료를 위해 장시간 이동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의료비는 물론 교통비와 숙박비 등의 추가적인 비용지출까지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가뜩이나 산전검사를 통해 태아가 선천성 심장질환 진단을 받으면 낙태를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치료할 수 있는 의료인프라마저 점점 붕괴되면서 낙태의 유혹이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산부인과에서는 산전진단으로 선천성 심장질환 진단을 받으면 공공연히 낙태를 권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대표는 "최근에도 환우회 쪽으로 태아가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진단이 나오면서 의사로부터 낙태를 권유받았다는 제보를 자주 접한다"며 "태아가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진단을 받은 뒤 환우회 회원으로 가입했다가 낙태를 하고 탈퇴를 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선천성 심장기형 질환도 정확하게 진단받고 수술적 치료나 약물을 비롯한 보존적 치료를 받으면 일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며 "소아심장 전문의가 있다면 이런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의학적 조언을 해줌으로써 선천성 심장질환 소아를 둔 부모들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고 치료에 대한 의지를 북돋워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과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소아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의료인프라 확충에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성인과 다른 소아의 신체.정신적 특성을 고려한 적정 수가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서울의 한 어린이병원 의료진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어린이 환자를 수술할수록 가산이 높은 반면 우리는 오히려 수술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이다. 몸무게 대비 수가를 책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소아환자에 대한 의료적 배려는 그 나라의 의식수준을 평가하는 잣대라는 점에서 지금의 소아 진료환경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 김상기 기자 bus19@rapporti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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