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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쓸 수 있는 약이 없는데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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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환우회사무국 작성일18-05-15 20:19 조회2,1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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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쓸 수 있는 약이 없는데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 안상호(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대표)

 

[라포르시안] 채 몇 킬로그램도 되지 않는 아기가 체외순환기를 돌리는 심장수술을 받고 몇 시간 간격으로 약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아이들이 치료받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소아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해야 할 것들이 많아 더 눈물겹다. 동일한 질환으로 동일한 약을 복용하려 해도 건강보험으로 보장받는 성인과 달리 소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약 값을 전액 본인부담해야 한다. 수술할 때 꼭 필요한 치료재료(의료기기)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작은 사이즈의 치료재료는 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수입업체도, 정부도 관심을 두지 않아 국내에선 사용이 어렵다.

 

신생아 등 소아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재료는 수요나 비용 등의 문제로 그동안 국내 수입 자체가 막혀 발생한 일이라고 애써 이해하려 한다 해도, 이미 오래전부터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고 심지어 성인환자는 약 값의 일부만 부담하며 복용하는 약제를 왜 소아환자는 약 값을 전액 부담해야 하는지 부모는 이해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경증질환자보다는 중증질환자가, 성인환자보다는 소아환자가 더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시작점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약제 허가범위에 있다. 식약처에 약제 사용 범위 신청 권한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제약사가 독점하고 있는데, 제약사가 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한 소아, 희귀질환, 고령자들에 대한 임상연구를 꺼리기 때문이다. 임상연구 모형이 보통 성인연령에서 진행되므로 적응증은 성인들에게만 적용되고, 소아는 동일 질환·동일 증상이라 할지라도 연령 기준을 벗어나게 된다. 결국 소아환자는 식약처에서 허가도 받지 않은 약제를 복용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식약처 허가범위 내에서 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허가범위(연령 기준)를 초과한 소아 약제를 급여로 보장해 줄 필요가 없다.

 

임상시험이 어렵고 경제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소아환자는 포기하는 제약사, 그런 제약사가 신청한 범위 내에서 허가를 내주는 식약처, 식약처의 허가 범위 내에서 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심평원. 이렇게 처음부터 제외되는 중증질환 소아환자는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현 정부는 문재인 케어를 내세우고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중증질환을 가진 소아환자는 대체약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은 급여로 복용하는 약제조차 건강보험 보조 없이 전액 부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증질환이자 희귀난치성질환인 선천성심장병(폐동맥고혈압) 소아환자에서 사용하는 폐동맥고혈압 약제다. 또한 중증질환 아기나 미숙아에게 사용하는 약제의 60% 이상이 연령기준 등 허가 범위를 초과해 사용되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제도 탓만 하고 있는 허가초과 사용 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약사에 독점적으로 부여했던 허가 신청권을 다른 기관에도 부여해 제약사 대신 허가범위를 확대 신청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2016년 7월 제약사에게 독점적으로 주어졌던 허가 신청권을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등 의료 단체에도 부여하는 ‘허가 또는 신고 범위 초과 약제 비급여 사용 승인에 관한 기준 및 절차 일부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벽에 부딪히며 물거품이 되었다. 허가범위를 초과해 사용하는 것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은 약제를 사용하는 것으로 국민 건강에 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정부 내 관련 단체가 복지부의 고시 내용과 전혀 다른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을 보면 허가권에 대한 침탈로 오해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작년 9월 복지부가 식약처, 심평원, 환자단체, 소비자단체,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그리고 각 학회 관계자들로 구성했던 ‘약제의 허가초과제도 개선협의체’에서 보여준 식약처의 모습은 환자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태도였다. 식약처 담당자는 회의에 대부분 참석하지 않는 등 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아버린 듯 불성실해 보였다. 결국, 협의체는 앞으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201 8년 1월에 일반약제 허가초과 제도 개선 논의는 기약 없이 중단됐다.

 

중증질환 소아환자에게 필요한 약제가 아니더라도 허가된 약제보다 효능이 뛰어나고 저렴한 약제도 많아 합리적으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좀 더 저렴한 약제를 사용할 수 있다면 건보 재정 절감에 도움이 되겠지만 재정은 차치하더라도 더 효능이 뛰어난 약제를 허가범위를 초과했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환자에게 큰 손해다. 또한 환자를 위해 임의로 비급여 처방을 감행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졸지에 범법자가 되어 버리고 당연히 삭감 또한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의학교과서에 나오는 약제조차 식약처 허가범위 때문에 환자에게 쓸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의약품 허가 제도를 완화하는 것에 대해 무엇을 우려하는지 모르는 바 아니다. 복지부의 개정 고시안에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면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으로 보완 수정하면 될 것이다. 중증질환 소아환자 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식약처 허가 제도의 무력화가 아니다. 허가초과 약제를 제한 없이 풀어 제약사의 임상시험용으로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모든 약제를 의사 또는 환자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신약이나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되지 않은 약제를 허가 범위를 초과하여 사용하고자 할 때에는 기존의 일반약제 사후승인제도 테두리 안에서 엄격하게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의 심의를 거쳐 심평원의 승인을 받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중증질환이나 희귀질환을 가진 소아환자에서 대체가능한 약제가 없거나 대체가능한 약제보다 치료효과가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 연령 제한이 있지만 이미 소아환자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 사용량이 일정 례 이상이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근거가 쌓여 안전성과 유효성이 충분히 확인된 경우, 특허기간이 종료되는 등 허가범위 확대를 기대할 수 없는 경우 등에 한해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허가제도를 만들었다. 하지만 허가초과 제도 개선을 가로 막는 자들의 일련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중증질환으로 투병 중인 소아환자가 아니라 그들만을 위한 허가제도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조속히 일반약제의 허가초과 사용제도가 개선되어 중증질환 소아환자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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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는?

2003년부터 선천성심장병환우회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은 환우회 대표를 맡아 선천성심장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와 성인 환우들의 건강권 확대를 위해 전투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선천성심장병 아이들이 편견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일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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